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동대문 아파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름은 동대문 아파트이지만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속해 있지요. 이곳은 1965년에 완공된 아파트로, 당시에는 가장 현대적이고 화려했던 주거 공간이었습니다. 연예인들이 많이 살아서 연예인아파트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주거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동대문 아파트의 탄생

1960년대 초반 서울은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인한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와 민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식 주거 형태인 아파트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1965년 준공된 동대문 아파트는 민간 자본에 의해 건설된 초기 고급 아파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동대문아파트

지하 1층, 지상 6층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은 서울 도심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인근 동대문 시장의 상권이 팽창하면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상인들과 정재계 인사들에게 이곳은 가장 선망받는 주거지였습니다. 전통적인 한옥이나 적산가옥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성공과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의미했습니다.

'연예인 아파트'라 불린 화려한 전성기

동대문 아파트를 수식하는 가장 유명한 단어는 단연 '연예인 아파트'입니다. 1960~70년대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스타들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이곳으로 몰려든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첫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사생활 보호 기능입니다. 동대문 아파트의 독특한 구조는 외부인의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내부 거주자들끼리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둘째는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입니다. 방송국이나 극장과의 접근성이 뛰어났던 창신동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던 연예인들에게 최적의 입지였습니다. 이러한 상징성 덕분에 동대문 아파트는 당시 신문의 연예 섹션에 자주 등장하며 대중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중정형(ㅁ자형) 구조와 현대적 설비

건축 전문가들이 동대문 아파트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설계 방식에 있습니다. 건물의 한가운데를 비워두고 그 주변을 주거 공간이 감싸는 최초의 '중정형(ㅁ자형) 구조를 갖춘 아파트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는 훗날 대한주택공사의 건축 기준이 됩니다.
중정 구조는 단순한 디자인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의 가운데가 뚫려 있어 자연 채광이 깊숙이 들어오고, 공기의 순환이 원활하게 하여 쾌적한 주거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또한, 중앙난방 시스템과 층마다 마련된 쓰레기 투입구는 당시 한국의 평균적인 주거 수준을 몇 단계 앞지른 혁신이었지요. 이는 한국인들이 아파트를 편리하고 선진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 빈티지한 미학

세월이 흐르며 건물은 노후화 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빛바랜 콘크리트 벽면과 층층이 쌓인 복도의 기하학적 구도는 현대 영화와 다양한 미디어에서 독특한 미장센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무한도전'의 '여드름 브레이크' 편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의 모델이기도 했지요. 스릴러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숨바꼭질'의 배경이 된 것은 물론, 방탄소년단(BTS)의 'I need you'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쓰이며 유명세를 탔습니다.
이렇게 동대문 아파트는 빈티지하면서도 서울다운 모습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 세월이 덧입혀진 시간의 흔적이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존과 재생의 기로: 서울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

완공 후 60년이 가까워진 현재, 동대문 아파트는 안전 등급 D등급을 받는 등 노후화로 인한 실질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2013년 서울시가 이곳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단순한 철거 대상이 아닌 보존해야 할 역사적 가치로 재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동대문 아파트는 재건축을 원하는 거주민의 권리와 역사적 장소를 보존하려는 공익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대문 아파트를 전면 철거하기보다는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내부 설비를 현대화하는 '도시 재생'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동대문 아파트가 가진 건축적 DNA를 보존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1960년대의 삶의 궤적을 전달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결론: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는 이정표

동대문 아파트는 1960년대 대한민국이 꿈꿨던 현대적 삶의 이상향이자,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머물렀던 화려한 무대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화려한 겉모습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독특한 중정 구조와 견고한 콘크리트 벽 안에는 대한민국 아파트 문화의 시초라는 거대한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60년 전 최고의 주거지로 추앙받던 동대문 아파트가 앞으로도 서울의 역사와 기억을 잇는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서 우리 곁에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