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 '마음의 즐거움'이라는 뜻을 지닌 딜쿠샤(Dilkusha)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의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의 화려한 외관을 가진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아픔과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던 이방인, 알버트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의 삶이 깃든 공간입니다.

알버트 테일러의 집, 그리고 3.1 독립 운동

알버트 테일러는 1910년부터 AP통신사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격동기를 겪었습니다. 그가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19년 3.1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들 브루스 테일러의 탄생을 기다리던 그는 병원 침상에 숨겨져 있던 '기미독립선언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일제의 감시가 극에 달했던 상황에서 그는 이 귀중한 문서를 갓 태어난 아들의 요람 밑에 숨겨 보관했습니다. 이후 일제의 눈을 피해 이 소식을 외신으로 타전함으로써, 조선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제암리 학살 사건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뒤 결국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공동벽 세워쌓기'로 지어진 독특한 건축적 미학

1923년 완공된 딜쿠샤는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건축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H'자형 평면을 가진 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프랑스식 쌓기를 적용한 벽돌조 건물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동벽 세워쌓기(rat-trap bond)'라고 불리는 독특한 외벽 시공 방식입니다.

높은-언덕위에-자리잡은-딜쿠샤-전경

이 방식은 한 켜는 벽돌의 면이 표면에 나타나도록 세워 쌓고, 다음 켜는 면과 마구리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쌓는 기법입니다. 이는 벽체 내부에 공기층을 형성하여 단열과 방습에 유리하도록 고안된 서양식 건축 기술로,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희귀한 사례로 꼽힙니다. 붉은 벽돌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질감과 문양은 딜쿠샤만의 이국적이면서도 견고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내부 구조와 생활 공간

건물 내부는 테일러 가족의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중앙부의 넓은 전면 베란다와 5개의 열주가 인상적인데, 1층 중앙의 대연회장은 세 개의 유리문을 통해 탁 트인 개방감을 줍니다. 동측에는 벽난로가 있는 아늑한 식당이, 서측에는 욕실과 옷방이 딸린 방들이 배치되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챙겼습니다.

메리 린리 테일러의 회고록인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를 보면, 당시 2층 응접실에서는 멀리 한강까지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경관이 훌륭했다고 합니다. 지하층에는 나무와 석탄, 와인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으며, 거대한 이동식 난로와 얼음상자 같은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게 하는 가재도구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밀한 기록들은 딜쿠샤가 단순히 지어진 집이 아니라, 한 가족의 애정과 역사의 긴장감이 공존하던 생생한 삶의 터전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딜쿠샤의 메시지

딜쿠샤는 오랜 시간 잊혔다가 2006년 알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단 점유와 훼손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는 전시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우리가 딜쿠샤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건물이 보여주는 외형적인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타국의 독립을 위해 진실을 기록했던 알버트 테일러의 용기, 그리고 그 흔적을 보존하고자 했던 가족들의 노력이 이 집의 진정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00년 전 테일러 부부가 2층 거실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조선의 희망을 이야기했을 장면을 생각해보며 글을 마칩니다.